철학, 이념, 사회 비평으로 유명한 책이지만 내가관심이 없어서 스타일적인 부분, 작은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입맞춤을 하고 미소를 지으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대화가 진실하고 의미심장한 시선 교환을 통해 이뤄졌다. 말로 하는 대화가 시작됐지만 그 속에는 이 진실함이 없었다. 그들은 할말은 많았지만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그저 할말이 있는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는 눈빛만 교환했다.p.191(2권)
한마디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그들이 교환하는 시선 속에는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은밀한 인식이 숨어 있었다.그들 사이에 의미심장한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지만 마슬로바는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그가 하는 말이 자기를 향해 하는 말임을 느꼈다. p. 279(2권)
장군 부인은 남편에게는 잔잔하게 말하고 정중한 태도를 취하는 반면 손님들에게는 사람마다 다양한 뉘앙스를 풍기며 극도로 상냥하게 대했다. 부인은 네흘류도프를 가족처럼 맞아주었고, 특유의 섬세하고 은근한 애교로 그의 환심을 샀다. 덕분에 네흘류도프는 새삼 자기의 장점을 인식하고 오랜만에 기분좋은 만족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의 시베리아행이 약간 엉뚱하긴 하지만 양심적인 행동임을 알고 있으며, 그래서 그를 특별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해주었다. p. 369(2권)
순진한 이들이 대개 그렇듯 네흘류도프는 자신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순수한 감정이 이들의 타락을 막아주는 강력한 보호막이었다. 네흘류도프는 카츄사를 육체적으로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을 품지 않았을 분 아니라, 그녀와 그런 관계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감수성이 풍부한 작은고모 소피야 이바노브나의 걱정이 그나마 현실적이었다. 그녀는 순수하고 단호한 성격의 드미트리가 여자에게 빠져 집안도 신분도 상관 않고 막무가내로 결혼하려 들까봐 걱정이었다.
만약 네흘류도프가 당시 카츄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더라면, 또 주변에서 그런 여자와의 결혼을 절대 해서 안되고 할 수도 없다고 설득하려 했다면, 고지식한 네흘류도프의 성격을 봐서 자신이 사랑하는 이상 그녀의 신분이 어떻든 결혼을 결심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모들은 걱정하는 바를 네흘류도프에게 말하지 않았고, 네흘류도프 역시 카츄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떠나고 말았다.
네흘류도프는 이 사랑스럽고 명랑한 카츄사와 공유했던 감정이 당시 자신을 사로잡았던 삶에 대한 충일감의 표출일 뿐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그가 떠나던 날, 카츄샤가 고모들과 함께 현관에 서서 약간 사시인 검은 눈에 눈믈을 그득 담고 배웅할 때는 네흘류도프 역시 결코 반복되지 않을 멋지고 소중한 뭔가와 완전히 결별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인기 그는 몹시 울적해졌다.p.77
끔찍한 변화는 그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타인을 신뢰하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자기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반대로 타인을 신뢰하며 산다는 것은 그저 남들이 정해주는 대로 산다는 것 자신의 정신적 자아를 거스르고 동물적 자아의 편에 선다는 뜻이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도 없었으며, 자신을 신뢰하며 살 때는 항상 타인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지만, 타인을 신뢰하기 시작하니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았다.p.78
군생활은 사람을 완전한 무위도식에 빠지게 만들어 결국 타락으로 이끈다. 합리적이고 유익한 활동이란 찾아볼 수 없으며, ㅇ니간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는 사라지고 부대와 제복, 깃발 따위의 상징적 명예만 강조된다. 타인에 대한 절대적인 지배력을 부여하는 한편, 상관에 대한 노예 같은 복종을 강요한다.
제복과 깃발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나 폭력과 살인의 묵인 말고도 명문가 출신 장교들만 근무하는 근위대 내에 만연한 부의 타락, 그리고 황족과의 교류는 사람을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내몰았다. 네흘류도프 역시 입대 후 동료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광적인 이기주의에 빠져들었다. 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이 깔끄마게 다려준 군복을 입고 다른 사람이 만들고 깨끗이 손질해서 갖다바친 무기를 들고, 역시 다른 사람이 키우고 길들인 준마를 타고 훈련이나 사열을 하고, 그와 다를 바 없는 동료들과 검술이나 사격술을 연습하고,또 그것을 남에게 가르치는게 다였다. 이 정도 일들에 황제를 비롯한 그의 측근들과 고위층 인사들은 격려뿐 아니라 사의를 표했다. 일과가 끝나면 장교 클럽이나 최고급 술집에서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르는 돈을 흥청망층 뿌리며 먹고 마시는게 미덕으로 간주되었다. 그다음은 극장이나 무도회장, 유곽으로 자리를 옮겼고, 그러고 나선 다시 말을 타고 칼을 휘두르며 쏘다니다가 또닫시 술과 노름과 여자에 돈을 탕진했다.
이런 생활은 군인들에게 특히나 치명적이었다. 민간인이라면 영혼 깊은 곳에서 수치심을 느낄 만한 이런 생활은, 군인들에게는 오히려 자부심을 불어넣어주기까지 했다. 그것은 네흘류도프처럼 러시아가 터키에 선전포고한 직후에 입대해 전시를 맞은 군인들에게는 더욱 심했다. 그들은 생각했다. '우리는 전장에서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한 사람들이니 안락하고 즐거운 생활을 누릴 자격도, 또 그럴 필요도 있어.' p.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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